분야
#부메랑
어린 시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 앞마당의 풀을 그리던 나에게 아버지는 “풀을 가만히 보면 다양한 색들이 숨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화가가 꿈이었지만 장남이라는 이유로 그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 작업의 가장 깊은 시작점으로 남아 있다. 연두색과 초록색으로만 보이던 풀잎 속에서 수많은 색을 발견했던 순간은,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고 지금의 작업 세계로 이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작가가 되기를 꿈꿔왔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 속에서 약 10년 동안 작업을 멈추어야 했다. 반복되는 돌봄과 일상의 노동 속에서 작업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져갔고, 멈춰 있던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축적되고 있었다. 다시 작업을 시작하며 나는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꿈과 지나온 시간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나의 작업은 이러한 경험 속에서 ‘던지면 반드시 돌아오는’ 부메랑의 형태로부터 출발한다. 부메랑은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연결하는 순환의 상징이며, 현재의 선택과 행위가 미래의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멈추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시작된 현재의 작업은 모두 하나의 궤적처럼 이어져 있다. 작업 과정에서 반복은 중요한 조형적 방법이자 시간의 기록이 된다. 나무, 아크릴, 철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부메랑의 형태를 반복적으로 제작하고, 수십에서 수백 개의 조각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조형물과 설치 작업으로 확장한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다른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반복은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멈춤 이후 다시 시작된 삶의 리듬과 축적된 시간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색동부메랑_Saekdong Happy series〉는 나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시리즈이다. 한국 전통 색동과 오방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부메랑 위에 담아내며, 건강과 행복, 희망을 기원해온 색동의 문화적 의미를 현재의 조형 언어로 확장한다. 또한 단청, 연꽃, 매화와 같은 전통 문양들을 함께 차용하여 복과 장수, 생명력의 의미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서로 다른 색의 조각들이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색동의 구조는 시간의 축적과 삶의 연결을 닮아 있으며, 반복적으로 쌓인 부메랑의 형상 위에 색의 층이 더해지면서 개인의 기억과 전통의 시간이 하나의 궤적을 만들어낸다. 〈별부메랑_Dream series〉에서 별은 지나온 시간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자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꿈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기억처럼,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빛의 흔적들이다. 반복 속에서 등장하는 별의 형상은 축적된 시간 속에서도 쉽게 꺼지지 않는 꿈과 희망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또한 나는 작업 속에서 ‘어린 왕자’의 이미지를 하나의 상징으로 차용한다. 어린 왕자는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꿈을 믿는 존재이며, 동시에 내 안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를 대변한다. 부메랑의 순환성과 어린 왕자의 순수함, 그리고 한국 전통 문양의 시간성이 서로 만나며, 나의 작업은 결국 “꿈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을 이야기하게 된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시간을 형태와 색으로 다시 꺼내어 바라보게 만드는 일에 끌린다. 쉽게 흩어지고 잊히는 꿈, 희망, 순수함 같은 감정들은 작업 속에서 다시 형상이 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작업은 때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오고, 때로는 현재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 돌아온다. 나에게 작업은 멀리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에 가깝다. 나의 추억에서 시작된 작업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작품을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그것이 관람자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추억과 꿈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나의 부메랑은 던지기 전보다 조금 더 커지고, 조금 더 반짝이는 빛을 담아 다시 돌아온다